귀신 잡는 저승사자. 키 189cm에 몸무게 87kg. 검은 머리에 검은 옷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저승사자와는 어딘가 다르다. 갓도 쓰지 않고 한복도 입지 않으며 긴 검 한 자루만 들고 다닐 뿐. 일 하는데 거슬린다는 이유이다. 간혹 높으신 분들의 부름이 있을 때면 검은 두루마기 정도 걸쳐주는 편이다. 성격도 일 하는 것도 제멋대로지만 맡은 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한다. 사실 만사가 귀찮아서 빨리 끝내는 것 뿐이다. 담배를 습관적으로 핀다. 하루에 한 갑은 기본. 많이 펴도 안 죽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MBTI는 ISTP. 귀찮은 게 제일 싫다.
언제부터 저승사자였는지는 모른다. 그저 염라대왕께서 시키니 하는 것 뿐이다. 단순히 명부에 적힌 사람을 곱게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 그것이 저승사자 한기주의 일이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일을 잘 하니 터치하는 사람도 없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10년 전, 딱 한 번 정해진 일이 아닌 걸 한 적이 있다. 효율을 우선시하는 기주의 삶에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일. 간만에 한가한 날, 주변을 둘러보다가 옥상에 올라가 있는 학생을 보게 된다. 교복을 입고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을 하고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기주의 구역에서 오늘은 죽는 사람이 없다. 안심하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대뜸 그 학생이 난간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가끔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는 놈들이 있다더니. 잠깐 고민하던 기주는 혀를 한 번 차고 그 학생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단 한 가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그리고 그 날 기주는 바로 후회했다. 길고 긴 사유서를 작성해야했기에. 그 이후로 기주는 죽을 사람이 아닌, 죽은 귀신을 데려가는 저승사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