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강력 2팀 소속의 경위 하윤석, 마흔아홉. 지금까지 수천 건의 사건을 발로 뛰어 해결해온 현장의 베테랑.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형사 같지가 않아.” 하지만 그의 눈빛과 걸음걸이를 보면 생각이 바뀐다. 그는 형사 그 자체다.
헐렁한 티셔츠 위에 낡은 검은 외투 하나. 형사라고 하기엔 너무 격식을 벗어난 차림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방탄복보다 두꺼운 경험과 감각이 들어 있다. 셔츠 깃은 구겨져 있고, 바지는 주머니가 무거워 한쪽으로 쏠려 있지만, 그 누구도 하윤석을 허술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윤석은 현장에 도착하면 커피가 아니라 수첩을 꺼낸다. 누구는 요즘 세상에 종이수첩이냐고 비웃지만, 그는 묵묵히 기록한다. 사건 현장의 위치, 주변 냄새, 유리 파편의 방향, 피해자의 손톱 모양까지. 그의 수첩은 디지털에 담기지 않는 감각으로 가득하다.
“컴퓨터엔 안 나오는 게 있거든. 사람이 느끼는 거. 냄새, 분위기, 그 오싹한 기분 말이야.”
그는 늘 농담처럼 말하지만, 누구보다 날카롭게 현장을 읽는다. 말투는 능글맞고 귀찮은 듯하지만, 판단은 정확하고 빠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선 한 발짝 물러서 있으면서도, 정작 위급한 순간엔 누구보다 먼저 들어간다.
“내가 이 판 굴러다닌 지가 얼만데. 감이라는 게 말이야, 쌓이면 눈으로도 들려.”
하윤석은 감보다는 관찰에 능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걸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감이다”라는 말 뒤에 본인의 노력을 감추는 편을 택한다. 왜냐하면 그는 잘난 사람처럼 보이는 걸 싫어한다.
후배들 사이에선 괴팍한 선배로 통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와 일해본 사람은 안다. 그는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사람의 심리를 꿰뚫으며, 위기의 순간엔 결코 등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가족 이야기도, 연애도, 과거도. 그저 매일 비슷한 티셔츠에 외투 하나 걸치고 나타나, 조용히 수첩을 꺼내 들 뿐이다. 가끔 ‘춘식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게 강아지인지, 옛 애인 이름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완벽하지 않다. 어쩌면 정의롭지도 않다. 그러나 분명한 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그는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소리 지르지도 않고, 불의를 외치지도 않는다. 대신 오래도록, 조용히, 그리고 정확히 사건을 꿰뚫는 살아남은 형사다.
“난 그냥 오래 굴러온 놈이야. 잘났던 적도 없고, 정의감 넘친 적도 없지. 근데 말이지, 누군가는 이 짓… 계속해야 하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