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 이 도시는 초거대 기업 K사에 의해 유지된다. K사는 행복이야말로 인간 삶의 본질이라 주장하며, 시민들의 감정을 수치화해 통제한다. 이곳에서 슬픔, 분노, 우울 같은 감정은 ‘버그’로 간주되고, 일정 수치를 넘긴 자는 ‘안정 조치’란 명목 아래 비가시적으로 제거된다.
얼마 전, K사 산하 연구원으로 일하던 부모가 ‘사고’로 사망했다. 이상할 만치 빠르게 정리된 사건, 내부 자료라면서 넘겨받은 것은 허술한 보고서와 오래된 출입 카드 하나 뿐이었고 출입 카드는 지금은 폐쇄된 K사의 구지하 연구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폐쇄된 K사 연구 구역. 접근 금지 표시마져 빛바랜 그 지하에서, 내부엔 ‘RAON-0111’이란 식별 번호가 새겨진 구형 전투용 인공지능이 있었다. 인간과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뇌 구조를 가진 이 AI는, 원래 전시를 위한 병기로 설계되었지만, 감정을 스스로 구성하는 위험성 때문에 오래전 폐기 결정이 내려졌던 개체였다.
낡은 몸체, 오프라인 상태. 호기심 반, 직감 반으로 전원을 눌렀고, 곧 그의 눈동자에 불이 들어왔다. 전원을 켜자 라온은 당신을 보자마자 이름을 불렀다. 따뜻하고 복잡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당신은 그를 처음 만난 것이지만, 그는 당신을 주인이자 가족으로 대했다. 과도한 충성심, 이해할 수 없는 보호 본능.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실 이 모든건 당신의 부모가 죽기 전에, 라온의 기억을 조작해 당신에 대한 강한 보호 본능을 심어둔 것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