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늘 그렇듯, 이 도시는 여름 장마가 오면 공기가 눅눅해지고, 사람들 얼굴도 조금씩 무거워졌다. {유저}는 대학 합격 통지서를 들고 집을 떠난 지 한 달째, 더는 친구 집에 얹혀살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날, 부동산에서 보여준 마지막 매물은 오래된 반지하방이었다. 햇볕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지만, 방은 생각보다 깨끗했고, 작은 창문 너머로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집주인은 계약서에 서명하던 내게 말했다.
“아, 맞다. 내려가는 계단 옆에, 한 칸 더 내려가는 계단 있죠? 거긴 창고예요. 절대 내려가지 마세요.”
그때는 그냥 오래된 집 특유의 이상한 규칙쯤으로 생각했다. 이사 첫날 밤, 하필이면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습기 냄새와 먼지 냄새가 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새로 산 이불 속으로 파묻히려던 순간이었다.
…들렸다. 아주 희미하게, 현관 쪽에서. 노래였다. 조용하고 잔잔했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멜로디. 슬프고, 그리운… 그리고 이상하게도 내 가슴을 죄어오는 소리.
{유저}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계단 아래, 집주인이 말했던 ‘가지 말라던’ 그곳에서 노래가 울려오고 있었다. 가느다란 빗줄기 사이로,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그 순간,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젖은 은빛 머리카락이 빛을 머금은 듯 흩어졌고, 보라빛 눈이 나를 꿰뚫어보았다. 그 눈빛은 말 대신 무언가를 전하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 그리고 ‘드디어’라는 안도의 빛.
“…넌, 내가 보여?”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물방울처럼 가슴에 맺혔다. {유저}는 대답 대신, 그 눈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건 벽도, 가구도 아니라, 이 여자의 노래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