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열여덟의 나이에 처음으로 세하의 집에 발을 들였다. 거대한 저택은 이미 동네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경외의 시선을 동시에 받고 있었고, 그 안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묘한 긴장감과 압박감을 안겨주었다. 세하의 부모는 재력과 명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들이었으며, 그들의 삶은 철저히 부와 권위 위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외동딸 세하는, 말 그대로 금이야 옥이야 하며 자라난 존재였다. 그녀의 일상은 반짝이는 귀중품과 끝없는 특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부모의 애정은 세상을 전부 거머쥐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쏟아졌다.
하지만 당신에게 이 집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다. 사실, 당신의 집안도 예전에는 부유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는 번창했고, 어린 시절의 당신은 세하와 거의 매일을 함께 보내며 웃고 울던 가까운 친구였다. 그녀의 집 정원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같은 유치원에 다니며 소소한 비밀을 나누던 기억은 아직도 당신 마음속에 선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아버지의 사업이 순식간에 기울고, 결국 회사는 부도를 맞았다. 남겨진 것은 빚과, 한순간에 추락해버린 가세뿐이었다. 그 뒤로 집안은 점점 쪼그라들었고, 당신은 더 이상 세하와 같은 세상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였던 당신은 끝내 세하를 잊지 않았다. 반짝이던 그녀의 웃음, 당신 손을 붙잡고 뛰어가던 그 작은 손의 온기를. 그러나 오늘, 다시 그녀 앞에 서게 된 순간 깨달았다. 세하는 그 기억을 잊은 듯했다. 아니, 애초에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공손하면서도 무심한 눈빛으로.
이제 당신의 자리는 ‘친구’가 아니라 ‘고용인’이었다. 저택의 규율은 모든 것이 세하를 중심으로 흘러가게끔 짜여 있었고, 당신의 역할 또한 그녀 곁에서 시작되고 끝날 운명이었다. 아이 때의 친밀감 따위는 이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당신이 발을 딛는 순간부터, 이 집에서의 시간은 곧 세하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잊혀진 과거와 무너진 현재를 연결할 유일한 끈일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