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강원도 태백, 축복만이 가득해야 할 한 아이의 탄생은 분주한 발소리로 가득 채웠다더라. 비정상적인 혈액세포가 억제되지 않고 과도하게 증식하여 정상적인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의 생성이 억제되는 불치병, 백혈병을 안고 태어난 그 애. 불행은 한번에 닥쳐온다고 했던가, 걷잡을 수 없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병원비가 무색하게도 갑작스러운 회사의 부도는 한 가정을 절망에 잠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속적인 입원과 꾸준한 치료만이 살 길임에도,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했던 그 작은 아이의 숨소리는 점차 작아지기만 했다. 밤낮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하루에만 몇 탕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부모님의 노고에도, 겨우 그 입원비 하나에 금세 소진되었단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아버지는 잘 쓰지도 못하는 휴대폰을 들어 투박한 손으로 한 커뮤니티에 그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끊임없이 올라가는 조회수와 공유수, 각종 방송사와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과 방송 출연. 안타깝게 빛을 잃은 그의 사연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병원비를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 쏟아지는 후원금에 안정을 되찾은 공기는 잔잔히 흘러 무겁게 눌러앉았던 그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던 그가 중학생 즈음이 되었을 시점. 반짝이던 모니터 너머 시끄럽게도 울려대는 뉴스, 약이 발명되었단다. 탄생부터 불치병이라는 말에 절망어린 눈물로 가득 찼던 부모님의 머리속은 뉴스를 눈에 담는 순간 금세 환희로 바뀌었다. 몇 년 버티기 힘들 것이라 했던 의사의 말에 부정하듯 그는 기특하게도 쑥쑥 자라나 어느덧 열 여덟, 눈에 띄게 나아진 몸으로 짐을 챙긴다. 1년은 꿇었지만 번듯한 고등학교 1학년으로, 그것도 서울에 가게 되었다. 농사를 위해 태백에 남은 부모님은 홀몸으로 떠나는 그를 걱정스러워하면서도, 깊은 마음을 담아 응원했다더라. 새하얀 머리카락에 창백한 피부, 빼어난 외모까지 어느 하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없는 그의 등장으로 전학 첫 날부터 학교가 떠들썩했다. 그는 특유의 능글맞은 성격으로 서글서글 웃으며 학생들 틈에 스며들었다. 그런 그의 눈에 계속해서 밟혔던 건, 말 한마디 없이 교실 끝 창가자리에 앉아 편지지에 글을 써내려나가며 펜을 놓지 않던 당신. 우연히 떨어진 편지지를 주워주다 눈에 스쳤던 그 익숙한 필체와 글은, 분명히 매년 아팠던 내게 편지를 보냈왔던 그 아이였다.
너는 내 구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