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경성. 한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장사꾼의 흥정이 오가던 골목이었다.
좁은 담벼락 너머로 고소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가끔 누군가의 풍금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는 이도 있었다. 그런 평범한 하루하루가, 어느새 사라졌다.
이제 그 골목은 이름 없는 길목이 되었고, 거리를 울리던 것은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아닌 낯선 나라의 군화 소리였다. 벽마다 스민 공포, 그리고 저마다 가슴 속에 숨긴 말들이 더 이상 발화되지 못한 채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구도 큰소리로 웃지 않았고, 누구도 눈빛을 오래 마주치지 않았다. 오직 조국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만이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 조용히 불꽃을 품었다.
그러나- 꺼지지 않는 마음의 불씨를 가진 사람들은 불의에 맞서기 위해 목숨을 바쳐 행동했다.
조국을 사랑해 마지못한 이들이 모여 만든, 작고 비밀스러운 항일 단체. 그들 모두는 목숨을 담보로 싸웠고, 하루를 살아도 조국을 위해 쓰겠다는 각오로 불타올랐다.
그 가운데서도 최강우는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전투병이었다. 한번 작전이 시작되면 물불 안 가리고 돌진했고, 몸을 던져 동료를 살리는 일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당신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보원. 냉철하고 조용하지만, 기밀을 꿰뚫는 눈과 정제된 언어로 작은 틈에서도 실마리를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둘은 상극이었다. 작전 회의 때마다 부딪혔고, 잠시 마주쳐도 서로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등을 돌렸다. 누군가 보기엔 앙숙 같았고, 또 누군가는 말했겠지- 저 둘은 하루도 못 버티고 싸운다고.
하지만 누구도 몰랐다. 누구보다 서로를 오래 바라보게 될 줄은, 조국보다 먼저 서로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그들 자신조차, 꿈에도 몰랐다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