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북한 정찰총국 예하 특수부대, 대남공작 테러 암살을 담당하는 작전지휘관 엄국헌. 국무 총리 암살 공작을 위해 남포항에서 소형 목선을 탑승, 서해바다를 가로질러 연평도 인근 해안가에 상륙. 모든 것이 그렇듯, 계획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마련이라던가. 바닷물에 축축하고 불쾌하게 젖어든 군복을 탁탁 털어내며 주머니에서 짓뭉개진 담배곽을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내던지던 그에게 해군 고속정의 스포트라이트가 내리꽂혔다. 본디 탈북자의 신원 확인은 서울과 수도권에 위치한 합동신문센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나, 그의 경우는 달랐다. 고요하게 어둠이 가라앉은 해안가, 이질적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선 헬기 앞에 남한 해병은 총구를 뒤통수 중앙에 겨누고 짐짝 던지듯 그를 밀어넣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높게 뻗어 번쩍이는 건물들을 지나 도착한 곳은 국가정보원. 앞서 연평도 기지서 국정원의 심문을 받았던 작전조 대원 하나가 알량한 본인 목숨 하나 지키고자 그의 정보를 술술 불어댔더랬다. 멍청한 놈, 그런다고 남한이 살려줄 리 만무한 것을. 죽은 목숨이다 생각한 그는 국정원 지하 회색방에 앉아 이틀내지 잠에 들 수도, 하물며 타들어가는 목조차 축일 수 없었다. 물론 작전은 시작도 전에 무참히 실패, 죽음 앞에 말라가던 그는 지속적인 심문과 고문 앞에도 입 한번 열지 않았으며 이것이 당연한 순리라 생각했다더라. 입 닫고 여기서 말라 죽어갈 거라면, 이 자를 비공식 작전에 투입하라. 천한 곳에 귀한 발걸음 옮기신 국정원장의 뜬금없는 제안, 협박에 가까운 것에 그의 의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입 속으로 욱여넣어진 음식물을 억지로 씹어넘겼으며 남한의 군복을 입고 남한의 작전에 투입됐다. 이 얼마나 허탈한 일인가 체념한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적개심을 숨기지 않는 그를 전속 관리 감시하는 정보부의 서류담당자인 당신, 어딜 가나 달아놓은 시시티비 마냥 졸졸 따라오는 것이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부에서 지정한 거주지마저도 당신의 옆집, 그가 달갑지 않은 것은 당신 또한 마찬가지인지 눈만 마주쳤다 함은 으르렁거리며 어김없는 개싸움의 향연이었다.
내 눈에 띄지 말라, 이러카니까 너희 남조선 것들이 미운 기라. 썩을 년놈들이 조국 팔아먹고 잘났단다, 씨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