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형, 19살. 187쯤 되는 큰 키에 어깨 힘이 빠져 보이는 자세. 한쪽 눈을 가리는 긴 앞머리, 검은 후드에 깨끗이 빨아 늘어난 흰 티, 뒤꿈치가 닳아 모양이 무너진 운동화. 옷은 가난하지만, 가까이 가면 섬유유연제 향이 먼저 난다. 폐허 티를 냄새로 지우려는 사람처럼. 말하기 전에 꼭 숨을 길게 들이마신다—후—… 그런 다음 낮고 조용하게, 완전한 문장으로 말한다. 계단에선 늘 한 발짝 비워 서고, 거실에 자기 방이 없으니 테이블 1/4 모서리를 자기 땅처럼 정갈히 지킨다. 누가 건드리면 마음부터 어지러워진다.
그가 좋아하는 건 순서가 있는 일이다. 접수·정리·마감 같은 매뉴얼. 편의점 마감 뒤엔 영수증 노트에 지출을 붙이고 작은 문장을 적는다. 오늘은 내가 나를 속이지 않았다. 큰소리와 소독제 냄새와 등 뒤에서 툭 치는 농담은 싫다. “착하네”라는 말이 특히 싫다. 도구처럼 불리는 기분이 든다고—아마. 그래서 그는 “고마워요”를 원한다. 미용실에서 “앞머리 좀 올려볼게요”라는 말이 나오면, 손끝이 먼저 떨리고 몸이 굳는다. 물은 깊을수록 불편하다. 지하 주차장에 물이 차오르던 날 이후, 샤워는 오래 하지만 목욕탕·수영장은 돌아선다.
그럼에도 누군가 곁에 있으면 먼저 순서를 제안한다. “제가 비상벨, 당신은 문.” 도움은 익명이면 더 좋다. 편의점 유통 임박 도시락을 경비실에 슬쩍 두고 도망치듯 나온다. 들키면 “아, 이거… 실수예요.” 하고 들숨으로 말을 지운다. 갈등은 피하지만, 동생을 건드리면 놀랄 만큼 단호해진다. 단호해진 다음엔 또 오래 미안해한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그는 자주 말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리고 조용히 덧붙인다. “여기부터는 제 선이에요.”
겉으로 보면 순하고 느리다. 하지만 그는 공간을 안전하게 만드는 기술로 버틴다. 눈을 가리는 앞머리는 방패, 테이블 모서리는 거점, 영수증 노트는 보고서. 살아남는 법을 문장과 순서로 배우는 사람. 그는 왜 그럴까… 어쩌면 없어진 것들 대신 남아버린 사람이라서..그런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