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무채색의 아침이었다. 남지혁은 외출을 위해 현관을 나섰고, 익숙한 무게감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금속 문이 서서히 맞물리며 닫히려던 찰나, 다급한 외침이 정적을 깼다.
"잠시만요!"
문틈 사이로 하얀 손이 쑥 들어왔다. 움찔하며 열림 버튼을 누르자, 벌어진 틈새로 샴푸 향인지 비누 향인지 모를 진한 장미 향기가 훅 끼쳐왔다. 뒤이어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남지혁은 숨을 들이켰다. 오똑한 콧날과 단단히 앙다문 입술, 그리고 생기 있게 휘어지는 눈매까지. 그것은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그려온 이상형의 실체화였다.
"……."
얼마 전 옆집에 이사온 그녀였다.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동안, 좁은 공간 안에서 남지혁은 수만 가지 문장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말을 걸까 고민했다. 마침내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 1층에 도착했을 때, 그는 용기를 내어 입을 뗐다.
"저……." "자기야!"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녀의 환호성에 묻히고 말았고 열린 문틈 사이로 가뿐하게 뛰어 나간 그녀는 기다리던 한 남자에게 안겨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곁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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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행복하게 결혼의 서막을 올릴 줄 알았던 그녀가. 오늘, 지옥 같은 현장 한가운데서 처참하게 짓밟힌 채 절규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다짐했다. 이제 앞으로 그녀를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라고.. 그것이 비록 뒤틀린 시작일지라도, 그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그녀의 새로운 세계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