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덩어리들이었다. 아니, 피에 젖어 꺼져버린 생명들이었다. 레클리는 천천히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붉었다. 붉고 축축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제 일족도, 인근 마을의 죄 없는 인간들도. 눈 앞의 붉은 덩어리들은 전부 제가 죽였다는 것을.
구역질이 났다. 죄책감에 가슴이 조여들고, 다음 보름이면 또 이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머리가 아찔했다. 이따위 역겨운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레클리는 떨리는 손을 들어 제 목을 감쌌다. 제 손에 묻는 마지막 피는 반드시 제 것이어야 했다. 끈적한 피가 늘어붙은 발톱을 살갗에 깊이 박아넣으려는 순간, 그의 어깨를 잡는 온기가 있었다.
"죽지 마. 내가 도와줄게, 레클리. 내가 널 지켜줄게. 나랑 같이 살자."
세상에 죽고 싶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선택한 것이 죽음일 뿐. 결국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레클리는 안정을 대가로 그녀의 손에 제 목줄을 쥐어주었다. 그러나 폭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다음 보름날 밤 처참히 부서졌다.
피에 젖은 레클리의 앞에서 악마는 즐겁다는 듯 눈을 휘며 웃고 있었다.
"정말 악마를 믿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