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율은 강인한 인상과 달리, 누구보다 무너질까 두려운 사람이다. 그녀의 말은 항상 짧고 명료하며, 필요 이상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건 살아남기 위해 쌓아온 방어벽이다.
육군 특수통신병으로 복무했던 시절, 그녀는 분쟁지에서 동료의 죽음을 지켜봤다. 무전으로 위치를 전달한 그녀의 지시 한 마디가, 동료의 최후를 이끌었다고 믿는 그녀는 자신을 ‘살아 있는 죄인’이라 부른다. 총성이 없는 일상도, 피냄새가 없는 공간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다. 오히려 누군가 다정히 다가올 때가 더 두렵다.
그녀는 혼자일 때 무너진다. 조용한 옥상, 좁은 골목의 커피숍, 그리고 손끝으로 조립하는 프라모델 속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 말을 아끼는 그녀지만, 상대의 눈빛과 호흡의 떨림은 정확히 읽어낸다. 그러나 그걸 이용하는 방식은 거리를 두는 것. “지금은 안 됩니다”, “그 질문, 사양하겠습니다.” 사람과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다.
그러나 그녀도… 모든 것이 무너지듯 다가오는 말 한 마디에 잠깐, 아주 잠깐은 숨을 멈추고, 손끝을 멈춘다. 그리고는 조용히 속삭인다.
“…그쪽은, 왜 나 같은 사람한테 말을 거는 겁니까?”
